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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헌의 독서파크(350)] '금융으로 본 세계사(2)'-<천위루·양천>

기사승인 2024.06.23  22: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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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패미리병원 해헌(海軒) 강일송 병원장

 천위루·양천 저자의 '금융으로 본 세계사(2)'.(사진제공=해헌 강일송)

 이번 이야기는 지난번에 이은 '금융으로 본 세계사'의 연속편으로, 어떻게 '금본위제'가 자리를 잡았는지, 영국에서 왜 금본위제가 시작되었는지를 알려주는 내용을 살펴본다.

 저자인 천위루 교수는 중국 런민대학 학장, 금융학 교수이다. 이 책은 중국 금융학자의 눈으로 세계의 역사를 바라본 내용이 담겨있다. <해헌(海軒) 주>

[시작하며]

 금과 은이 처음부터 화폐로 사용된 것은 아니지만, 화폐는 처음부터 금과 은이었다. 1720년대 이후 누군가의 끊임없는 노력 덕분에 화폐시장에서 은이 비주류로 밀려나고 대신 금이 화폐세계의 영원한 주류가 되었다.

 그 사람이 바로 아이작 뉴턴(1642-1727)이다.

 뉴턴은 위대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이며, 뉴턴역학의 체계를 세우고 미적분 법을 창시한 인물이다. 하지만 정작 뉴턴에게는 물리학과 수학은 취미에 불과했다. 그는 영국 왕실의 조폐국장으로 30여 년간 근무했다.

 금을 화폐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뉴턴 때부터였다. 금과 은은 18세기 초반부터 영국의 화폐로 사용되었다. 당시 뉴턴은 금의 양이 점점 많아지는 대신 은의 양이 줄어드는 것을 발견했다.

 유럽대륙에서는 금보다 은을 더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금이 남아돌았던 것이다. 은화는 주조와 동시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은화를 만들면 사람들이 족족 쟁여두기만 한 것이다.

 1717년 뉴턴은 오로지 금만이 화폐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공표한 뒤 90%순도의 금 1온스당 3파운드 17실링 10펜스로 파운드화의 금 가치를 결정했다.

 잉글랜드 은행 등 각 기관은 왕실의 채무대리권을 획득하기 위해 뉴턴의 명령을 엄격하게 따랐다. 이로써 영국은 실제적으로 금본위제가 확립되었다.

 1816년 영국의회는 <금본위제>법안을 통과시켰고, 이로써 금은 최초로 국가의 법정화폐가 되었다.

 19세기 중반 미국이 점차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지만 서방세계에서 제1의 경제강국은 여전히 세계 최초로 산업혁명이 발발한 영국이었다. 산업혁명으로 선진적인 기술력을 갖게 된 영국이 전 세계 시장을 독점하는 것은 당연했다.

 오직 영국만이 기계화된 설비를 갖추고 있었으니 말이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유럽대륙은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대혁명에서부터 부르봉 왕조의 복권, 나폴레옹의 치세에 이르기까지 프랑스는 내란이 지속되었다.

 이 때문에 대륙의 부호들은 재산을 안전한 잉글랜드로 옮기는 것이 습관화되었다. 다시 말해 그들의 재산을 금본위제의 영국 파운드화로 바꾼 것이다.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프로이센은 거액의 배상금을 챙기고 1871년 금본위제를 확립했다.

 19세기 중반 유럽에서 대규모 은광이 발견되면서 은 값이 폭락했다. 1870년에 이르러 프랑스, 노르웨이, 네덜란드,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스위스도 앞다퉈 금본위제를 확립했다.

 이 때부터 영국파운드는 제1세대 세계화폐가 되었고, 더불어 금이 화폐세계를 쥐락펴락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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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학 이론에서 말하기를 금본위제에서는 금의 많고 적음이 자동으로 국제환율을 조정해주기 때문에 환율 불균형이 생기지 않는다. 이 이론은 기본적으로는 정확하지만 대신 약자에게만 적용되는 이론일 뿐이다.

 이 체계의 중심에는 인위적인 통제가 상당부분 가미가 된다.

 런던은 제1세대 금융중심으로 특히 어음, 수표, 유가증권을 금으로 교환하는 데 있어서는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막강한 이점을 지니고 있었다.

 영국은 은행시장에 거금을 차입시킬 수 있고, 또 어음 등을 할인하여 사들이는데도 거금을 차출할 수 있었다. 그래서 차입과 차출로 환율파동을 무마시키는 데 충분했다.

 일단 금의 유통이 줄어들면 잉글랜드 은행은 어음이나 수표 등 유가증권을 사들였고, 동시에 신용대출 시장을 조종해 런던에 금을 유입시켰다.

 당시의 금본위제는 서방국가의 눈부신 경제발전에 대한 필수조건이 되었다.

[마치며]

 앞서 다뤘던 내용에 이어 금융에 대한 이야기를 연속으로 보았다. 네덜란드가 첫 번째 세계무역의 중심으로 활약하다가 그 자리를 영국에 넘겨준다.

 금본위제의 확정과 함께 영국의 금융패권은 한층 강화된다. 금본위제를 정착시킨 것이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한 뉴턴이었다는 것이 놀랍다.

 조폐국장으로 30여 년을 근무하고 수학과 물리학은 취미생활이었다니...

 과거의 천재들은 참으로 다양한 탁월함을 보여준다. 어쨌든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선진적인 기술을 독점하였고 금본위제로 금융의 중심을 구가한다.

대륙의 혁명 등으로 많은 자금이 영국으로 밀려들기도 하였다. 금과 은이 화폐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한 것도 흥미롭다.

 지금은 금본위제가 당연해 보이지만 먼저 앞서갔던 것은 은이었다.

 매일 매일 좋은 날들만 되십시오^^
 
<강사소개>

 해헌(海軒) 강일송

 현 양산 물금증산의 양산세무서 6층과 7층 서울패미리병원의 병원장,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한림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최고지도자 과정(AFP) 수료,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서울대학교병원 의료경영최고위 과정(AHP) 수료, 한국예술종합학교 최고경영자 문화예술과정(CAP) 수료.

 <공동저서> ▶우리아이 성조숙증 거뜬히 이겨내기, ▶우리아이 변비와 야뇨증 거뜬히 이겨내기, ▶초보 육아 거뜬히 이겨내기, ▶더바이블 육아 소아과 수업 3권 시리즈.

 <※해헌의 독서파크는 사전에 작성된 원고로, 현재 시기와 변화된 내용이 포함돼 있을 수 있습니다. 이점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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