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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헌의 독서파크(377)] '중국에 부는 강희제 열풍(1)'-<정진홍>

기사승인 2024.09.26  18:2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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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패미리병원 해헌(海軒) 강일송 병원장

 정진홍 저자의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중 '중국에 부는 강희제 열풍(1)'.(사진제공=해헌 강일송)

 오늘은 인문학 열풍을 이끌었던 삼성경제연구소의 SERI CEO 정진홍 교수의 책인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중 '중국에 부는 강희제 열풍(1)'을 보려고 한다.

 저자는 CEO를 위한 조찬특강의 리딩멘토로 활약했고 KBS, SBS 등에서 시사토론자로 활동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중앙일보 논설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이번 책에는 중국 지도부가 벤치마킹하려 하고 가장 주목받고 있는 황제인 청나라의 강희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강건성세'라는 말도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로 이어지는 청나라 3대 133년간의 부강했던 시절을 말한다.

 한 번 살펴본다. <해헌(海軒) 주>

[시작하며]

# '중국의 강희제 열풍'

 근래 들어 중국은 해군증강에 몰두하고 있다. 그런데 이 비슷한 외교술을 1405년부터 28년 이상 펼친 또 다른 인물이 있다. 명나라의 환관 '정화(鄭和)'다.  

 정화는 30여 년 동안 지금의 아라비아해, 동아프리카 연안까지 무려 7차례나 왕복했다. 그러나 정화의 대원정 후 명나라는 활짝 열었던 문을 닫아 걸었다.

 지금의 만리장성은 명나라 시절 척계광이라는 장군의 지휘하에 다시 쌓은 것이다. 성을 쌓는 자는 오히려 성안에 갇혀 망하게 마련이다.

 명나라는 이자성의 난을 겪으면서 자멸의 길을 걸었다. 결국 명왕조는 청태조 누르하치가 만주일대를 평정하고 2대 태종 홍타이시를 거쳐 3대 세조 순치제가 북경에 입성하면서 막을 내렸다.

 고작 15만명에 불과한 만주족의 청왕조가 1억5천만명의 한족으로 구성된 명 왕조를 무너뜨린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기적은 이 같은 여세를 지속시켜 130여 년간 청 왕조를 단단한 반석 위에 올려놓고 찬란한 전성기를 이어간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의 치세였다.

 오늘날 중국의 지도부가 따르려고 하는 인물은 진시황도, 한고조도, 한무제도, 원태조 칭기즈칸도, 명태조 주원장도 아닌, 바로 강희제다.

 대체 강희제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었기에 '새로운 중국'을 표방한 오늘날 중국에서 한족도 아닌 만주족 출신의 황제를 벤치마킹하려 하는 것일까?.

 강희제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성군으로 불린다. 그는 누르하치의 증손자이자 북경을 함락시킨 순치제의 아들로서, 무려 61년간이나 황위를 지켰다. 나라를 세운 사람은 증조부 누르하치였지만, 진정한 강건성세를 이룩한 청나라의 실질적인 창업주는 강희제였다.

# '강희제의 리더십과 인재중용'

 명나라 한족들은 군사적으로는 복속당한 뒤에도 만주족 왕조에는 봉사하지 않겠다는 강한 자존심을 지켜나갔다. 하지만 강희제는 스스로 한어, 즉 중국어를 배움으로써 한족을 감싸안기 위해 노력했다.

 강희제의 믿기지 않는 리더십의 원천에는 무엇보다 인재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

 강희제는 이 시대의  걸출한 사대부 이곽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무려 7번씩이나 그를 직접 찾아갔다.

# '강희제의 학구열'

 강희제는 책을 보다가 피를 토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학구열이 높은 황제였다. 그는 한족출신의 유학자로부터는 주자학을, 예수회 출신의 서양인 신부로부터는 자연과학을 배우는 등 학문에서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그의 이 같은 호학과 향학열, 끊임없는 탐구가 청 왕조의 문화적 전성기를 이뤄낸 바탕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 '주인된 황제는 절제함이 당연하다'

 강희제는 하루하루에 충실했다. 국정에 충실한 황제는 예로부터 격무에 시달렸다. 광야를 누비던 만주족 핏줄답게 틈틈이 사냥을 즐기며 바쁜 격무를 견뎌낼 체력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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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학자적 면모와 더불어 대단한 무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3번의 난을 제압해 명 왕조의 잔존세력을 일소했고, 대만을 점령해 병합했다.

 또한 러시아 군대를 패퇴시키고 티베트를 공략해 복속시켰다. 현재 중국의 영토는 강희제때 윤곽을 잡은 것이다.

 강희제의 시대는 유럽 절대 왕정과 동시대다.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와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와 같이 군림했다. 선교사 부베는 태양왕 루이 14세에게 보고서를 썼다.

 "강희제는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군주입니다. 그럼에도 사치스러움이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못해 소박하기 그지없습니다. 역대 제왕들 가운데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강희제는 어릴 때부터 단정함과 신중함이 몸에 배어 있었고, 서예와 무예, 사냥을 좋아했다. 술과 여색은 가까이 하지 않았다. 일생을 검소하게 살면서 향락에 대한 욕망을 극도로 자제했다.

# '국궁진력=존경하는 마음으로 몸을 굽힌다'

 강희제의 좌우명은 국궁진력이었다. 이는 모든 것의 위에 군림하는 황제의 좌우명으로는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진심으로 스스로를 낮추어 국궁진력을 다했고 이 모습은 오늘날의 서번트 리더십의 전형이다. 그는 죽기 5년전인 1717년에 고별상유를 썼다. 60여 년의 치세를 돌아보며 남긴 유서치고는 짧은 글이었다.

 "한 가지 일에 부지런하지 않으면 온 천하에 근심을 끼치게 되고, 한 순간을 부지런하지 않으면 천대, 만대에 우환을 남기게 된다"

 그는 좋은 '리더(good leader)'를 넘어선 '위대한 리더(great leader)'였다.

[마치며]

 이번 이야기는 중국 역사상 가장 성군으로 불린다는 '강희제'에 대한 글을 보았다. 그는 중국이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하는 한족도 아니고 변방의 오랑캐인 만주족 출신이었지만 학문과 치세에 뛰어난 황제가 되었다.

 현대의 중국 지도부가 가장 닮고 싶어하고 배우고 싶어하는 강희제.

 그는 뭔가 남달랐다.

 먼저 그는 현대의 리더십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재중용의 마인드가 있었다. 황제가 7차례나 인재를 찾아갔었다.

 그리고 학문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였다. 새로운 문물을 배우고, 받아들이는 데 거리낌이 없었기에 시대에 앞서갈 수 있었다.

 여기에 가장 부유한 군주였음에도 절제할 줄 아는 검소함과 '국궁진력'이라는 황제에 맞지 않는 "존경하는 마음으로 몸을 굽힌다"는 좌우명을 평생 실천하였다.

 훌륭한 리더를 가지는 것은 큰 복이다.

 누구나 사실 리더가 될 수 있고, 나는 리더와는 상관없다는 사람도 이러한 덕목을 가슴에 새기면서 살다보면 자기가 속한 모임이나 사회, 국가가 더욱 바람직하게 변하리라 생각한다.

 힘찬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강사소개>

 해헌(海軒) 강일송

 현 양산 물금증산의 양산세무서 6층과 7층 서울패미리병원의 병원장,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한림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최고지도자 과정(AFP) 수료,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서울대학교병원 의료경영최고위 과정(AHP) 수료, 한국예술종합학교 최고경영자 문화예술과정(CAP) 수료.

 <공동저서> ▶우리아이 성조숙증 거뜬히 이겨내기, ▶우리아이 변비와 야뇨증 거뜬히 이겨내기, ▶초보 육아 거뜬히 이겨내기, ▶더바이블 육아 소아과 수업 3권 시리즈.

<※해헌의 독서파크는 사전에 작성된 원고로, 현재 시기와 변화된 내용이 포함돼 있을 수 있습니다. 이점 양해 바랍니다>

양산뉴스파크 webmaster@ysnews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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